극동의 정치 무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한국의 민중들은, 무장하지도 않았고 무방비 상태이지만, 그들의 민족성의 독특한 기질을 형성하는 의연하고도 변함없는 낙관적 태도로 생명과 자유를 위한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희망을 향해, 희망이 그 절망으로부터 자신이 생각한 것을 이루기까지.
정한경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미국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가르친 학자이며 한국의 사정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하여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글을 쓰고 강연하였다. 평안남도 순천 출생으로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18년 네브라스카 대학교(University of Nebraska) 석사 학위 논문인 “The Oriental Policy of the United States(한국어 역본: “미국의 동양정책”, 서울: 키아츠, 2021)”에서 미국의 대(對) 동아시아 외교 정책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한 미국의 묵인을 비판하였다. 1921년 아메리칸 대학교(American University) 박사 학위 논문 “The Case of Korea(한국어 역본: “한국의 사정,” 서울: 키아츠, 2019)”에서는 3.1 운동과 관련하여 5천개의 팜플렛과 1만개의 정기 간행물을 분석하여 영어권에 소개하였다. 이 논문에서 그는 일본의 한국 지배를 “Korea has been Prussianized.”로 묘사하여 1차 세계대전 독일의 침략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재미 독립운동가로서 정한경은 일본의 한국 지배 실태를 알리고 동아시아의 평화적 질서 확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1919년 3.1운동 소식을 들은 직후 그는 3월 11일 미국 국무부에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1882) 제 1조에 의거하여 3.1운동 참가자들에 대한 일본의 가혹한 처벌을 중지하도록 미국의 거중조정(Good offices)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낸다. 같은 해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그는 서재필, 이승만 등과 함께 필라델피아에서 1차 대한인총대표회의를 개최하여 미주 지역 독립 선언을 주도하면서 독립선언문 영어 번역에 대한 수정을 제안하였다. 그는 이승만과 함께 일본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 침략을 막도록 하기 위해 한국을 완충 국가로 만들 것을 해법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후 그는 미국 각지를 돌면서 연설, 기자 대회 등을 통해 한인들과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상황을 널리 알렸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하여 1962년 그에게 건국훈장 3등급: 독립장을 수여하였다.